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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야키는 센다이시를 중심으로 즐겨 먹는, 소 혀를 두툼하게 썰어 소금 간을 하여 숯불에 구운 미야기현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쇼와 23년(1948년), 도쿄에서 수련한 야마가타현 출신 요리사 사노 게이시로가 당시 양식 재료로 취급되던 소 혀에 주목해 일본인의 입맛에 맞도록 소금구이로 재탄생시킨 것이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1950년 센다이 시내에 전문점 '다이스케(太助)'를 개업하면서 규탄야키가 탄생했으며, 전후 식량난 속에서 쌀 대신 보리밥을 곁들이고 당시 활용도가 낮았던 소꼬리로 만든 꼬리곰탕을 함께 내는 정식 스타일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센다이역 주변과 고쿠분초를 중심으로 수십 곳의 전문점이 밀집해 있으며, 보리밥·꼬리곰탕·난반미소·아사즈케(가벼운 절임)를 곁들인 '규탄 정식'이 정통 메뉴로 전국에 알려진 센다이의 명물이 되었다.
발상
규탄야키의 발상은 야마가타현 출신으로 도쿄의 양식점에서 수련한 요리사 사노 게이시로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당시 양식 재료로 취급되던 소 혀의 맛에 주목해, 전후 얼마 되지 않은 센다이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소금 간을 한 숯불구이라는 조리법을 고안해냈다. 당시에는 소 혀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그는 미야기·야마가타 두 현의 식육 시장에 직접 전화를 걸어 공급처를 찾아다녔다고 전해진다.
역사
1950년(쇼와 25년), 사노 게이시로는 센다이 시내에 규탄야키 전문점 '다이스케(太助)'를 열었으며, 이곳이 센다이 규탄야키의 발상점으로 여겨진다. 개업 당시는 쌀이 부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규탄에 보리밥을 곁들이고, 당시에는 버려지기 일쑤였던 소꼬리를 끓인 꼬리곰탕을 함께 내는 정식 형태를 고안했다. 이 조합이 평판을 얻으며 이후 전문점들에도 이어져 센다이의 정통 스타일로 자리 잡았고, 고도 경제 성장기 이후에는 센다이를 대표하는 명물 요리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징
두툼하게 썬 소 혀에 소금으로 밑간을 하여 하룻밤 정도 재운 뒤, 표면에만 얕게 칼집을 넣어 숯불로 정성껏 구워내는 것이 특징이다. 씹는 맛이 있는 식감과 진한 감칠맛이 매력이며, 보리밥·꼬리곰탕·난반미소·아사즈케를 곁들인 '규탄 정식'으로 제공되는 것이 정통 스타일이다. 센다이역 주변과 고쿠분초에는 전문점이 밀집해 있어, 가게마다 다른 간과 두께를 비교하며 맛보는 즐거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주요 식재료
음식 문화
전후 식량난이라는 제약 속에서 탄생한 규탄야키는 보리밥과 꼬리곰탕 등 식재료를 낭비 없이 활용한 지혜의 산물이며, 센다이 식문화 속 창의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요리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는 센다이역 주변에 전문점이 밀집해 있어, 출장이나 관광길에 들르는 센다이 기념품·센다이 맛집의 대표 격으로 자리 잡았다.
가정식과의 차이
가정에서 소 혀를 조리할 때는 얇게 썰어 간단히 굽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전문점의 규탄야키는 두툼하게 썬 소 혀를 하룻밤 재워 숙성시킨 뒤 시간을 들여 숯불로 구워내는 점이 크게 다르다. 보리밥과 꼬리곰탕을 곁들이는 정식 스타일도 전문점 문화 속에서 확립된 것이다.
유명 맛집
자주 묻는 질문
Q. 규탄야키에는 왜 보리밥과 꼬리곰탕이 함께 나오나요?
A. 고안자 사노 게이시로가 개업한 1950년 무렵은 전후 쌀 부족 시기였기 때문에, 쌀을 절약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가 되도록 보리밥을 곁들였다. 여기에 당시 활용도가 낮았던 소꼬리를 끓인 꼬리곰탕을 더한 것이 정통 조합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