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탄잔 하나오리는 오키나와 본섬 중부 요미탄손에 전해지는 문양 직물로, 날실과 씨실을 띄워 짜는 기하학적 꽃무늬가 특징이다. 류큐 왕국이 중국·동남아시아와의 교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14~15세기 대교역 시대에, 대륙에서 전해진 뜬무늬 직조 기법이 요미탄잔(현재의 요미탄손)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그 기원으로 여겨지며, 왕부에 바치는 헌상포나 사족 계층의 의복으로 귀히 여겨져 왔다. 메이지 시대 이후 쇠퇴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전으로 거의 명맥이 끊길 뻔했으나, 1964년 요미탄손의 유지들이 노인들의 기억과 남아 있던 옛 천을 단서로 복원에 나서 약 90년 만에 기술을 되살려냈다. 복원의 주역들은 이후 요미탄잔 하나오리 사업협동조합을 결성하여 후계자 육성과 기술 전승에 힘쓰고 있다. 무늬에는 '전화(진바나)', '부채꽃(오지바나)', '풍차꽃(카지마야바나)'의 3가지 기본 문양이 있으며, 각각 부귀·자손번영·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76년 국가 전통공예품으로 지정되었으며, 목면과 견직물로 만든 오비·기모노 옷감 외에 민사 오비 등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발상
14~15세기, 류큐 왕국이 중국·동남아시아와의 교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대교역 시대에, 대륙에서 전해진 뜬무늬 직조 기법이 요미탄잔(현재의 요미탄손)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기원으로 여겨진다. 류큐 왕부에 바치는 공납포로 짜였을 뿐 아니라 사족의 의복으로도 쓰였으며, 하나오리의 세 가지 기본 문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고유의 양식이 자리 잡았다.
역사
메이지 시대 이후 쇠퇴하였고, 태평양전쟁의 오키나와전을 거치며 한때 기술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1964년, 요미탄손의 유지들이 노인들의 기억과 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물을 단서로 복원에 나서 약 90년 만에 기술을 되살려냈다. 1975년 오키나와현 지정 무형문화재, 1976년에는 국가 전통공예품으로 지정되었으며, 요미탄잔 하나오리 사업협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후계자 육성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특징
날실이나 씨실을 띄워서 짜는 '하나오리(뜬무늬 짜기)' 기법으로 천 표면에 입체감 있는 기하학적 꽃무늬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본 문양은 '전화', '부채꽃', '풍차꽃'의 3종으로, 각각 부귀·자손번영·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류큐아이(쪽), 후쿠기, 차륜매(테카치) 등 식물 염료로 물들인 실을 사용하는 점도 특징이다.
기법
하나오리(뜬무늬 짜기)
날실 또는 씨실을 일정한 규칙으로 띄워 짜 넣어 천 표면에 입체적인 꽃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으로, 요미탄잔 하나오리를 대표하는 핵심 기법이다.
세 가지 기본 꽃무늬
전화(부귀), 부채꽃(자손번영), 풍차꽃(장수)이라는 3가지 기본 문양을 조합하여 30종 이상의 기하학무늬를 짜낸다.
사용되는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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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방법
- 読谷山花織事業協同組合
- 요미탄손 자키미의 전통공예센터 내에서 하나오리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조합. 오비와 기모노 옷감부터 소품까지 폭넓게 취급한다.구매처 보기 →PR